한국방문

30년만에 모국 방문 28 – 안동하회마을

William Beak 2018. 12. 20. 00:30




30년만에 모국 방문 28 – 안동하회마을


전날 울산에서 늦게 돌아왔다.

오늘 아침은 날씨가 아주 상쾌한 고국의 가을날이였다.



대구자형은 중학생때 봉화에서 대구로 유학오셨고

영문학박사까지 공부하셨다.

고등학교 교장으로 8년전에 은퇴하시고

한동안 무엇을 할지 몰랐다고 하셨다.

그러시다 이틀마다  대구 앞산을 오르시고

고향인 봉화를 혼자서 자주 며칠 다녀오신다고 했다.



이모님의 장녀인 대구사촌누님은 경북여고를 수석으로

졸업하시고 집안 형편상 장학금 받고 간호대학을 맞혔다.

결혼전에 간호원으로 일하시다가

결혼후 주부로 두 아들과 막내딸을 뒷바라지 하셨다.

대구자형님이 은퇴하셨을때 누님은 다시 간호 자격증을 따시고

병원에서 야간근무 하신다고 바쁘.



두분은 한번도 자녀들을 학원에 보내지 않고

두 아들을 서울대학에 보냈으며 막내딸은 의대에 입학을

할 정도로 자녀를 훌륭하게 키우셨다.

두분은 늘 부지런 하시고 검소한 생활을 하신다.



보통 대구에서의 아침은 자형님이 아침을 준비 하시고

나는 아침상 차리는데 도와주다가 나중에 설거지를 했다.

식사 하면서 자형님이 오늘 봉화를 같이 가서 며칠 지내다 온다고 하셨다.

나는 제일 존경하는 자형님의 고향인 봉화가 보고싶었다.


천천히 아침을 먹고 간단히 며칠간 있을 준비를 .

대구자형님이 운전을 하시고

조금 있으니 대구시를 지나 고속도로에 들어섰다.




1시간쯤 지나 안동시로 빠지고 경북도청을 지나면서

보여준 건물은 엄청나게 커서 웅장하게 보였다.

자형님의 말씀으론 대부분 차는 지하실 주차장에 있다고 했다.




조금 지나니 유네스코에 지정된 안동하회마을

보고 간다고 말씀하셨다.

차가 많이 주차되어있고 많은 사람들이 보였다.

차에서 내려 하회마을로 가는 버스를 탔다.

아직도 햇빛은 강해서 그늘이 없으면 더위를 느꼈다.















조금 걸으면 기웃거리다가 2사람 타고 다니는것을

렌트해서 발목이 불편하신 아버지를 자형이 태우시고

나는 바삐 쫒아 다니기 바빴다.




풍산 류씨 집안의 발상지이며 그들의 자손들이 여기에 머물러 있다.

조선 중기의 문신 서애 류성룡과 겸암 류운룡이 이 곳에서 태어났다.

임진왜란이 발발하기 직전 군관인 이순신을 천거하여

선조로 하여금 전라좌수사로 임명하도록 하였으며

이순신으로 하여금 임진왜란 당시 열세였던 조선의 전세를

역전시키는 데 공을 세웠고, 임진왜란에 4도 도제찰사,

영의정으로 어려운 조선 조정을 총 지휘하였다.


노량해전과 같은 날인, 정인홍, 이이첨 등의 북인의 상소로

인해 영의정에서 관직삭탈하게 된다.


안동으로 내려가 선조의 부름에도 올라가지 않고

임진왜란 때 겪은 후회와 교훈을 후세에 남기기 위해

《징비록》을 저술하였다.

이 책은 대한민국의 국보 제132호이다.


죽을 때까지 청렴하고 정직한 삶을 살았던 청백리이면서

조선의 5대 명재상’ 가운데 한 사람으로 평가받기도 한다

이순신과는 어려서부터 같은 동네에서 함께 자란 절친한

사이로서 후견인 역할을 하였으며 이순신의 형 이요신과

친구사이기도 하다. -위키백과사전에서


류성룡같은 위대한 인물이 없었으면 전설적인 이순신장군도

나타나지 않았을것이고 진주성 전투 1차의 김시민과 2차의

6만이나 백성들의 마지막 전투로 목숨을 받쳐서  

지켜낸 조선왕국은 없어졌을 것이다..

대구자형과 아버지



아버지와 







하회마을 주위로는 논에서 익어가는 벼를 볼 수 있는

농촌풍경에 그너머로 흐르는 강이

아름다운 풍경을 보여주며 조용하고 평화롭게 보였다..


2017108- 안동하회마을

아버지와 함께한 8주간 고국방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