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궁화 집
무궁화 집
올 여름은 너무나 강루량이 적어서 동네를 걸으면
집집마다 잔디가 누렇게 변해 있었다.
아침, 저녁으로 정원에 물주기에 바빴다.
그렇다고 건조한 날씨도 아니였고 5-6일간 지속되는
무더위에 1-2일 숨실수 있는 날이 중간에 있어서
다행이란 생각도 들게 했다.
자주 2-3일간 구름이 뒤엎고 빗방울이 내려도 아주 잠시에
그쳐서 기대를 아주 포기하게 만들었고 폭우가 내려야
비가 제대로 올것 같았다.
지난 40년 이상 이 지역에 거주 하면서 예전에 이렇게
심한 가뭄은 단 한번으로 기억에 남아있다.
이상 기온과 이변적인 Covid-19로 얼떨떨하게 지내는데
Delaware 주에 사는 친구가 전화가 왔다.
요양원 nursing home에 계신 어머님이 돌아 가셨다고 했다.
코로나로 세상이 뒤집히고 400 km 거리를 오래된 차로
갈수 있을지도 의문이여서 서슴없이 말을 할수 없었다.
친구들 아버님이 30년전부터 한분 한분 돌아가시다
작년으로 다 가시고 이제는 어머님이 돌아가시니
세월의 흐름으로 세대가 어김없이 전환되는걸 더 느끼게 한다.
델러웨어 친구의 아버님이 이세상을 떠났을때 일도
문득 떠오르면서 곰곰히 생각하니 벌써 20년전이다.
그 당시 새 직장을 시작해서 개인적인 휴가도 없고 미국에선
직계가족이 아니면 큰 의미로 생각 안해서 허락도 받기가 힘들었다.
그당시 이생각 저생각을 하면서 개인적으로 이틀을
내 마음대로 못한다는 처량한 생각에 가기 전날 보스 한테
허락 대신 친구 어머님 장례식에 간다고 말만 하고 나왔었다.
지난 30년동안 친구집을 2-3년만에 들르면서
고우신 친구 어머님 생각을 떠오르게 한다.
내 고향 강원도에서 태어 나셔서 친근감이 더있다.
통천에 태어나셨으니 지도로 보니 내가 있었던 양구보다
더 북쪽으로 금강산 지역을 넘어서 동해 해안에 위치 했다.
그당시 여성으로서 숙명대학을 나오셨고 힘드신 미국 이민생활속에서
골프도 즐기셨고 한인 교회에도 열심히 가셔서 권사 이셨다.
제가 방문하면 항상 친절 하시고 고우셨던 여사님..
이틀후 8월 26일 아침 5시에 준비해서 뉴저지 친구집에
도착해서 같이 친구차로 델러웨어를 향했다.
친구 와이프가 가면서 먹기위해 커피와 김밥, 만두를 사서
차안에서 아침식사겸 먹으면서 시티를 나와서 훤한 고속도로를 달렸다.
지난밤까지 무더운 날씨가 언제 그랬다는 듯이 구름 한점없이 해맑았다.
장례식장에 도착해서 주차차장에 잠시 있으면서 올해
처음으로 보는 친구들과 대화를 했다.
친구 어머님은 바쁘고 Covid-19 생활에서 가끔 우리가
만남을 하라는 마지막 말씀같이 다 같이 모이게 해 주셨다.
미국에서는 장례식 전날 어웨이크 AWAKE라고 해서
마지막 잠들어 있는 고인의 모습을 볼수 있는 기회다.
Delaware친구 아버님은 2000년4월11일 장례식이였다.
친구들과 funeral home에 들어가니 Covid-19으로
사람들이 많이 없었고 30분 장례예배후 viewing을
한사람 한사람 줄을서서 침묵을 지키면서 볼수있었다.
끝나고 긴 행렬의 차들로 다니시던 교회에 잠시 들렸다가
burial site로 가서 장례식을 2시간 만에 맞쳤다.
우리 일행은 친구 식품점 옆에 있는 한인식당에서 점심을 먹은뒤
친구집에서 몇시간을 보내고 뉴저지에 있는 친구집에
도착했을때는 밤이라서 하루밤을 지내고 아침에
뉴저지 친구 직장에 대려주고 한아름에서 시장을
본 후 집에 도착하니 집주위로 50그루쯤 심은 무궁화 꽃들이
환하게 만발이 되서 나를 반겼다.
앞으로는 많은 무궁화가 피어나는 무궁화 집으로 될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