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방문

다부동 전적기념관

William Beak 2021. 6. 23. 03:40

4년전 아버지와 고국방문 당시 대구자형 안내

자형 고향 봉화에 며칠을 묵고 있다가

대구로 오는길은 보슬비가 내리고 있었습니다.

잠시 안동 봉정사를 들리고 다부동 전적기념관을 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위키백과에 의하면 1950625일 한국 전쟁 발발 후

북한은 무기와 훈련이 부실한 국군을 연이어 물리치고

승리하여 3일 만인 628일 서울을, 75일에는

오산 전투에서 미군까지 격파하고 724일 대전을,

7월 말 목포와 진주, 8월 초 김천과 포항을 함락시켰다.

그러나 낙동강 전선에서 국군과 미군의 강렬한 저항으로

교착상태에 빠졌고 치열한 전투가 몇 차례씩 벌어졌다.

83일 유엔군은 마산-왜관-영덕을 잇는 최후의 낙동강 방어선을 쳤다.

다부동 전투는 한국 전쟁 당시 가장 치열했던 전투로

꼽히는 전투로 경상북도 칠곡군 가산면에서

195083~ 829일 대한민국 국군과 미군

15천명이 북한군 3만명의 대공세를 저지시키고

대구로 진출하려던 세를 꺾었다.

육이오를 맞이해서 좋은글이 있어서 올립니다.

 

625일은 한국전이 시작된 날입니다.

하지만 전쟁이 시작된 71년이 지난 이후에도 아직까지도

아무도 이 전쟁에 대한 책임을 지고 있지는 않습니다.

이 한국전에 대한 책임을 가리기 위해선 누가 먼저 전쟁을

시작했는지를 가리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아직까지도 북한과 북한을 주총하는 자들은

한국전쟁에 대해 “미국이 사주해 일으킨 북침 전쟁”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주장과는 반대로, 전세계 학계에서는

한국 전쟁은 “김일성이 기획하고 스탈린과 마오쩌둥이

후원한 전쟁”으로 결론을 내린 상태입니다.

이렇게 너무나도 뻔한 진실이 북한과

그들을 주총하는 세력에 의해서 지속적으로

논쟁 거리가 된다는 것과 그 논쟁을 대한민국 정부가

항변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옹호하는 듯한 입장을 펼치고 있다는 점에서,

625일 한국전 대해서 몇가지 적어 봅니다.

1. 한국전쟁은 엄연한 남침 전쟁이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한국전쟁은

   북한의 기습적인 38선 이남으로 행한 군사적 행동으로 시작된 전쟁입니다.

   물론 1950625일 이전에 38선 주변으로 수많은 작고 큰 교전이 있어 왔지만,

   625일에 이루어진 대대적인 남하 작전은 일시적인 그리고 우발적인 교전이 아닌,

   계획적이고, 전략적인 군사 작전이였음이 명백합니다.

2. 한국 전쟁은 냉전 시대의 강대국의 대리전쟁 (proxy war)이 아닌

   김일성의 남한의 적화통일을 위한, 공산당 정권 찬탈을 위한 전쟁이였다.

   2017년 한강이라는 작가가 NYT에 기고문을 통해

   “The Korean War was a proxy war enacted on the Korean Peninsula

    by neighboring great powers.” 라는 주장을 펼쳤고,

    또 그것을 청와대가 공식 SNS을 통해 공유하였습니다.

    이렇게 한국전쟁이 냉전 시대의 대리전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북한이나

    혹은 북한을 주총하는 세력들의 북침 논리와 같은 맥락입니다.

    그 논리는 북한이 전쟁을 시작한 것은 미국 제국주의가 남한을 대리로 하여

    북진통일을 이루려고 하여, 북한은 어쩔수 없이 자기방어를 위해 중국과 소련의 힘을 빌려

    미국 제국주의에 맞서 싸운 것이라는 주장입니다.

    물론 이승만 대통령이 북진통일을 원하지 않았던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북진통일의 목표가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건설을 남한에 제한시키지 않겠다는 의지였습니다.

    또한 이러한 북진통일을 이루기 위한 군사적인 행동을 당시 미국은 오히려

    이승만 대통령에게 대북도발을 하지 말라는 분명한 입장을 전했습니다.

    결국 북한과 북한 주총 세력이 주장하는 대리전, 혹은 북침은 말도 안되는 논리인 것입니다.

3. “피를 통해 얻은 자유, 그 자유를 위한 정의로운 전쟁, 정의로운 전쟁으로 이룬 평화.”

    이 세 문장이 어쩌면 지금 한국이 누리고 있는 평화 대한 가장 적절한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한국전쟁 당시 자유민주주의를 지켜내지 못했다면, 지금 한국이 누리고 있는

    자유, 평화, 번영은 없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지속적으로 한국 정부가 “정의로운 전쟁 보다는 비겁한 평화을 원하며,”

   “평화를 궁극적으로 지켜주는 것은 (군사력이 아닌) 대화”이며,

   “북한에 대한 유화 정책”등을 정책의 방향성으로 잡는 것은 이렇게 피로 얻은 자유를 부정하며,

    전쟁을 통해 어렵게 이룬 평화를 지키기 위해선 아무것도 안하겠다는 정부의 의지를 표현하는 것입니다.

    2019년 현 한국 정부가 말하듯 “어떠한 전쟁도 없이 평화”를 한반도에 가져 오는 것은 다시 말하면,

    그 어떠한 대가를 치르더라도 전쟁을 피하는 것은 결국 한국전쟁에서

    우리가 싸워야 했던 이유를 부정하는 것입니다.

    정리 하자면, 한국 전쟁은 북한의 남침으로 시작된 비열하고 추악한 권력 쟁탈 전쟁이 였으며,

    그 김일성의 야욕을 국군과 미군, 그리고 UN군의 피로써 막아낸 전쟁입니다.

    대한민국 정부는 지금 누리고 있는 자유, 평화, 그리고 번영의 시작이 어디 였는지

    절대로 잊어서는 안될것 입니다.

    또한 우리는 누가 이 비참한 전쟁을 일으켰는지 절대로 잊어서는 않됩니다.

 

6·25 전쟁, 육이오 전쟁, 한국 전쟁으로 수 백만명의

사상자를 만들고 국토를 초토화 시켰던 참담한 전쟁으로

피해가 없었던 가족은 드물다고 생각됩니다.

저 외할아버지는 목사로 평양에서 가정을 두었지만

공산정권이 들어서 위헙을 느껴서 1949년 단신 몸으로

남하 하셨으나 실종되셨다.

외할머니는 5남매를 거닐고 혼자서 가정을 꾸려 나가시다가

195012월 초에 피난을 하시다가 아들 둘을 잃었습니다.

몇달 걸려서 친정인 경남 상남을 찾았지만 반겨주는

친척들도 없이 부담을 느끼는 모습이였다고 했습니다.

친할아버지는 진주에 거주 하셨는데 19507월말에

북한군에 점령됐고 밤마다 하는 부녀자 모임을 방해 하셔서

감옥에 갖히셨습니다. 그러다가 9월 중순경 북한군이

후퇴하면서 묶여 가시다가 구사일생으로 생존 하셨지만

심한 후유증으로 오랫동안 아프셨다고 합니다.

한국 전쟁으로 수 백만명의 사상자를 만들고 국토를

초토화 시켰던 참담한 전쟁은 없었고 비슷한 7년간의

임진왜란과 26년을 거쳐서 9번 몽고 침략이 생각납니다.

대한국민은 모두 상세히 기억을 하셔야 되고 해외에

사는 한인도 잘 아시고 후세들에게도 남겨서 다시는

참담한 전쟁이 없도록 노력해야 될줄압니다.

저는 예전에 '여명의 눈동자' 책을 읽었고 드라마도 봤습니다.

영화는 '태극기 휘날리며', '고지전', '국제시장',

'서부전선', 그리고 '장사리: 잊혀진 영웅들'.

드라마는 '전우' , '로드 넘버원'

유튜브로 '아일라', '크로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