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2년만에 다시 가는 여행..
William Beak
2024. 8. 14. 03:25
치아 상태는 어릴 때부터 안 좋았다.
아버님이 강원도 양구 방산 목장 마을에서
포병장교로 근무하실 때
어렴풋이 만 4살까지 있었던 기억이 있다.
동네 친구들 하고 걸어 다니면 작은 마을을 지나서
시냇가가 나오고 큰 통나무 하나로 된 다리를 지나면
군 기지 정문이 나왔다. 좌측으로 가면 산등선을 따라
철조망 뒤로 총을 매고 있는 군인들이 보였다.
민간이 사는 최전방이라 전기와 상수도 없었다.
북한의 몇명이 남침도 자주해서
민간인의 사망자도 나오고 지프로 가다가 길 한가운데
큰 돌이 있어서 치우다가 납치된 장교도 있었다.
남한에서도 스파이를 보내고 어떨 때는 한 명도 살아서
돌아올 수 없었다. 대부분 원주민은 3팔선에서 한참 이북이라
징병으로 전쟁 때 끌려간 자식을 애타게 기다리는 부모도 있었다.
어느 날 어금이가 아프기 시작하고 심하게 부어서
오른쪽 얼굴이 벌겋게 부어서 진통을 참기 힘들었다.
마침내 군트럭을 타고 치과의사 있는 마을로 비 포장된
산길을 가다가 길에 있는 큰 웅덩이에 빠져서 꼼짝 못해서
구원대가 오기를 기다리면서 하루 종일 트럭 안에서 있었다.
다음날 다시 무사히 가서 이빨을 뽑는데 진통제가 없어서
덩치 큰 두성인이 내 몸을 꽉 잡고 했으나 나의 아픔의 발악으로
창문이 깨졌다고 한다.
그런 후 씹는 이빨이 없는 나는 죽으로 끼니를 하는데
옆에서 있는 여동생은 옥수수를 너무 맛있게 먹고 있어
너무 부러웠다. 참다 못해서 여동생한테 조금 씹어서
달라고 한적이 있다.
코로나로 시작해서 지난 몇년동안 치과의사에
못 가고 소홀했다. 지난주에 가니 어금이 하나를
빼야 되는데 3주 후에 예약이 되고 5백불이라고 한다.
미국에서는 긴 예약과 우라 지게 비싼 비용이고
손 제주 있는 기술이나 수술은 한국을 비롯해서 동아시아가
덩치만 큰 미국인들 보다 낫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