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 금융 Personal Finance

FINANCIAL 시련

William Beak 2019. 3. 3. 03:28




FINANCIAL 시련


대학 졸업후 7년만인 19919월에 1만불 학생융자를 다 갚고

199191일에 첫 애가 태어났다.


집앞에 있는 호수가에서..


첫애의 기쁨에 한동안 정신이 없었다.

직장의 동료들도 지난 몇년동안 하나 둘 결혼 하기 시작했다.

싱글때 같이 즐기던 시간도 없어졌고 결혼한 동료들이 더 많았다.


직장으로 통해 봉급에 5-10% 401K 로 들고 있었으나

그 당시는 자세한 내용이나 얼마나 중요한지도 몰랐다.

그냥 있다는 말에 대부분 동료들은 봉급의 몇프로를 하던가

아예 않하는 동료도 있었다. 20년후에 은퇴를 좌우 할지는

아무도 몰랐었다. 우리들은 젊었고 은퇴 하고는 너무나 멀었고

결혼하고 보금자리를 꾸미기에 바빴던 시기였다.

Fortune 500 대 기업 중 16 %만 신입 사원에게

전통적으로 확정 된 연금 제도 pension plan가 있다.

아직도 연방정부 공무원은 연금 제도가 있고

, 지방정부 공무원은 없어져 가고 있다.

대부분 자신 봉급에서 401k로 회사에서 2-6프로 매치 match하는

식으로 되어서 미국도 갈수록 대부분 직업인들이

살기 어려워서 반 이상은 아무 재산이 없다.


나의 주식 거래는 뜸 해졌고 자금이 절실히

필요함을 느꼈지만 어떻게 할수 없는 처지에 실망은 있었지만

새 가정을 꾸미면서 지내는 것도 좋았다.

그런데 다니는 회사가 1992년에 들면서 좋지 않은 소문이

들리고 단짝 동료 Brian는 벌써 이력서를 여기저기 보내더니

INTEL 회사와 인터뷰도 했다. 나도 Income Tax를 겨우

4월초에 끝내고 이력서를 작성 할려고 생각했다.

4월 중순 월요일 여느때 처럼 아침 출근해서 트레일러에

있는 사무실에 갔는데 보스가 기다리고 있는것 같았다.


20분만에 내 배지 badge를 앞수하고 서류 몇장에

싸인하면서 보스는 2주간 봉급을 준다고 하고 다음 직장을 위해

자기 추천서 recommendation letter도 주었다.

2달전에 3-4명이 해고 lay off를 당했으나

30분만에 IBM Building을 나오면서 너무 순간적으로 일어난

해고는 집에 와서 며칠이 지나도 충격이 커서 믿겨지지가 않았다.



1-2주일 지나서 알았다. 엔지니어 동료들 반은 해고 되었다.

나머지도 3개월후에 해고 되었다.

우리는 한 장소에 모여 다른 그루먼 Grumann 브랜치는

해직 패키지 severance package를 더 주었다고 했다.

1년 근무 했으면 2, 5년의 근무는 10주 되는 봉급이였다.

회사측은 우리측의 공평한 요구를 거절했다.

우리는 지방 신문을 통해 호소 할거라고 말했다.

그러니 마침내 우리의 요구를 받아주었다.


4년 반만에 다시 이력서를 만들고 첫 아들도 보면서

직장을 찾는 것도 쉽지가 않았다.



한번은 애 하고 같이 있는데 인터뷰 하자는 전화가 와서

언금언금 기어다니면서 우는 애를 할수 없이 다른방에 가두고 했다.

다행히 내 처의 직장은 변동없이 안전해서 큰 위안이 됐다.

6개월의 실업자 해택이 끝나도 몇번의 전화 인터뷰만 있었고

직업을 못 구했다. 마음이 급해지기 시작했다.

할수없이 401k의 돈을 10% 패널티를 내고 찾아서

4천불 되는 좋은 컴퓨터를 사서 더 배우면 직장 구하는데 도움이 될것 같았다

컴퓨터 사서 2주일 후에  IBM contractor의 

Proconic 이라는 중소 기업에 직장을 잡았다

Computer chip을 만드는 wafer box

보관하는 로봇 robots이 고장나면 고치는 일이였다.

한달간 교육 받으면서 일하다가 일주일에 4일 밤 8시 부터

아침 8시 까지 12시간 했다.


12시간 혼자서 일하는건 쉽지가 않았다.

10군데 나마 있는 로봇는 고장 없는 밤도 있지만

동시에 3-4개가 고장나서 진땀이 난적도 있었다.

제일 힘든건 낮에 충분한 수면을 못 취했다.

3-4시간 자고 일어나면 다시 잠이 안 올 때가 많았다.

몇개월 하면 적응되서 나아질것 같았으나 여전했다.

좋은점은 일주일에 3일 쉬었다.


East Fishkill IBM


아비엠 타운이었던 여기가 15,000명 씩 East Fishkill 과 

Poughkeepsie 그리고 7,000Kingston,

도합 37,000명이 되는 곳이였고 컴퓨터칩(Computer Chip)

실리콘배리(San Jose, Sillicon Valley) 전체보다 더 만들었으며

이부품은 순수한 회사내에 수요하는 양이었다.

1993년 봄에는 타운 전체를 흔드는 이변이 일어났다.

Kingston IBM은 문닫고 각각 15,000명 이였던

East Fishkill & Poughkeepsie5,000명으로

엄청난 갑작스런 큰 해고 lay off에 경제 공황을 맞아

유령타운으로 변해가는 것을 목격했다.


몇달이 지나면서 그 회사 다니는 것이 싫어졌다.

그전에 7군데 알바도 하고 2군데 정식으로 일 했지만

직장이 싫어지는건 처음이였다

그러다 보스턴에 있는 POLAROID 회사에 인터뷰를 했다.

4 직원과 각자 인터뷰 하면서 친절하고 professional 했고

회사도 마음에 들었다. 2주후 에이전트 agent 잘 되간다고 연락이

왔고 조그만 있으면 기쁜 소식이 있을 거라고 말했다.

2-3주 기다리다 에이전트 한테 연락하니 엔지니어링 부서의

책임자가 큰 병으로 입원해서 고용하는 것을 취소했다고 말했다.

기대하고 기다렸는데 다시 암흑 세계로 돌아가는 것 같았다.

 그러면서 하루하루 일하고 있는데 Brian이 좋은 소식을 전해왔다

자기가 다니는 회사에 엔지니어를 구한다고.

그당시 나는 아무 직장이나 잡고 싶었던 심정이였다.


인터뷰를 하고 일주일 후에 신체검사도 했다.

19939월에 Genpak 회사를 다니기 시작했다.

프래스틱으로 일회용 컨테이너를 만드는 회사였다.

5명의 엔지니어로 가족분위기 같이 좋아 보였다.

한시간 운전거리에 있어서 1주일 후 내집에서 15분 거리에 사는

브라이언 Brian과 교대로 운전하며 출퇴근을 하기 시작했다.


1991-1993년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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