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31

2년만에 다시 가는 여행..

치아 상태는 어릴 때부터 안 좋았다. 아버님이 강원도 양구 방산 목장 마을에서  포병장교로 근무하실 때 어렴풋이 만 4살까지 있었던 기억이 있다. 동네 친구들 하고 걸어 다니면 작은 마을을 지나서 시냇가가 나오고 큰 통나무 하나로 된 다리를 지나면 군 기지 정문이 나왔다. 좌측으로 가면 산등선을 따라 철조망 뒤로 총을 매고 있는 군인들이 보였다. 민간이 사는 최전방이라 전기와 상수도 없었다. 북한의 몇명이 남침도 자주해서민간인의 사망자도 나오고 지프로 가다가 길 한가운데 큰 돌이 있어서 치우다가 납치된 장교도 있었다. 남한에서도 스파이를 보내고 어떨 때는 한 명도 살아서 돌아올 수 없었다. 대부분 원주민은 3팔선에서 한참 이북이라 징병으로 전쟁 때 끌려간 자식을 애타게 기다리는 부모도 있었다. 어느 날 ..

나의 이야기 2024.08.14

너무 아팠다

태어나서 너무 힘들 정도로 아픈 건 1986년 Port Washington Long Island에서 혼자 살 때였다.  그 당시 한국회사에서 1년 근무했는데 회사에서 걸어서 20분 거리로 다락방에서 부엌도 없고 마주편의 방과 같이 사용할 수 있는 화장실 뿐 이였다. 대부분 잠만자고 가끔 전기를 사용해서 간단히 라면을 해 먹었고 작은 테이블에 의자 2개와 침대 옆에는 쌓아놓은 신문만 눈에 들어왔다. 다행히 회사에서 점심을 사주었고 저녁 회식이 자주 있어서 부엌의 필요성은 못 느꼈다. 그러던 어느 날 독감이 걸렸고 전화도 없어서 도움을 받을 수 도 없었고 너무 아파서 약국에도 갈수 없었다. 침대에서 누워 온몸이 아프면서 열이 심하게 나면서 악몽에 사경을 헤 매고 있었다. 가끔 엉금엉금 기어서 라면을 만들어 ..

나의 이야기 2024.07.09

오랜만에 여행..

코로나로 갇혀서 지내는 동안 주위에 많은 변화가 왔다. 미국시골은 마스크를 안쓰는 편이나 지금도 쓰는 사람들이 보인다. 백신을 4번이나 맞았지만 몇달전에는 귀찮고 바이러스도 약해졌을 거라는 생각으로 피했다. 그러니 2달전에 직통으로 걸려서 며칠간 고생하고 2주간만에 회복되었다. 2번이나 한국방문을 연기하면서 지연된 여행은 가벼운 마음이 아니였다. 9월4일 2022년 케네디공항에서 출발로 2시간 인천공항 layover때 대구자형을 만나서 캄보디아로 DESTINATION을 잡았다. 보통보다 1시간 일찍 출발한다고 줄서서 기다렸지만 1시간이상 기다렸다. 그전에는 북극으로 해서 러시아,몽고, 중국으로 가는 노선이였는데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알래스카 해안가로 가는것 같았다. 가는 도중 위급한 승객이 생겨서 Anch..

나의 이야기 2024.01.29

Bakery 빵

오래전부터 뉴욕시티 가면 항상 들리는 한인 제과점. 아니면 한아름 슈퍼마킷에 들려 20-30불 여러가지 빵들을 사서 며칠간 먹으면서 즐겼다. 미국 제과점은 너무 달기만 해서 고소하고 달콤한 한인 제과점에서 나오는 빵들이 너무 좋았다. 특히 단팥빵과 찹쌀 도나스는 나에게 행복을 주었다. 그런데 코로나로 뉴욕시티를 못가서 제일 아쉬운 것은 한인 제과점에서 나오는 빵들이 눈 앞에 어른거렸다. 미국 슈퍼마킷에서 일주일에 한번 식빵을 사서 아침은 계란 푸라이와 같이 먹고 점심도 빵 한조각 위에 Gouda cheese를 언져서 토스트 해서 따끈한 우유와 먹으면 아주 간단히 즐겨 먹는다. 여기에 있는 한인 슈퍼마킷은 한인 제과는 없고 비슷한 프랑스에서 수입한 빵이 가끔있어 사서 먹기도 했다. 그런데 포장된 빵 성분 ..

나의 이야기 2021.03.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