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척 5

외 할아버님을 찾았습니다!!!

외조부께서는 목사로 활동하시다가 일제강점기 시절은 독립운동 가담으로 어려운 가족 생계는 외조모가 하셔야 했습니다. 평양에 가족이 살면서 광복을 맞았지만 공산권이 수립되면서 외조부는 단신으로 1949년에 이남 하셨죠. 그후 상인을 통해 값어치 되는 물감을 보내왔다고 하셨습니다. 한국 전쟁이 터지고 외조모는 가족을 거느리고 일사후퇴때 너무나 힘든 피난을 오시다가 작은 외삼촌을 잃어서 1971년에 찾으셔서 1972년에 큰 외삼촌이 미국으로 이민 가시고 1975년에는 저희 가족도 합세 했습니다. 외조모는 친정인 창원에 갔지만 고된 생활은 계속 이였습니다. 피난 후 몇 년 동안 수소문하고 신문을 통해 외조부를 찾으려고 했지만 행방불명 이였습니다. 그러다 이번 고국 방문 시 한 조카가 네이버 블로그에 올린 글을 접..

친척 2024.10.29

20년 만에 찾은 작은 외삼촌 2

20년 만에 찾은 작은 외삼촌 2  안경하신분이 작은 외삼촌   그런데 덴마크라는 나라는 24세 미만이 결혼을 하게 되면 부모의 승인 하에 결혼식을 하는데작은 외삼촌은 아무도 없어 여자 부모의 승낙 하에 결혼식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결혼 후 대학과 직장을 오가는 생활을 반복하다 이란성 여아 쌍둥이를 낳고 그리고 차 후 아들도 낳았다. 자녀들은 모두 덴마크 이름을 지었고 한동안 정신없는 생활을 이어 갔다. 결혼, 직장, 그리고 대학원까지 다녀 석사학위 Master Degree in Chemistry를 받았을 때 까지는 엄청난 고난이 뒤 따랐다. RCA 회사에 다니다가 마침내 1969년 East Fishkill IBM (한때는 14,000명이 직원이 있었던 회사) 에 취직 했을 때는 처음 동양인..

친척 2016.09.14

20년 만에 찾은 작은 외삼촌 1

20년 만에 찾은 작은 외삼촌    일사후퇴 때 피난길에 오른 외할머님은 큰 짐을 머리에 이고 오면서 뒤쳐지시고 열 살 된 작은 외삼촌은 작은 가방을 들고 제일 앞에서 걸었다. 앞장 선 작은 외삼촌은 다리를 먼저 건너갔지만 아군이 후퇴하면서 그 다리를 폭파시켰고 뒤늦게 온 나머지 가족이 다리에 도착해 몇 일간 끊긴 다리 주변에서 찾으려고 했지만 행방을 알 수 없었다. 차 후 자세한 내막을 알아 본 즉 외할머니와 자녀들은 대동강 이남에 있었고 미군이 저녁 즘 탄약과 무기들을 평양 비행장에 폭발시켜 천지가 울리 듯 평양 전체의 지축이 흔들렸다고 한다. 계속 터지는 폭음에 가옥 들은 흔들리고 온 식구들을 공포에 몰아넣었다고 한다. 외할머님은 우선 간단한 보따리를 추스르며 하루 이틀 피신했다가 다시 ..

친척 2016.09.09

잠시 정착했던 작은외삼촌 집에서의 미국 시골생활 시작

잠시 정착했던 작은외삼촌 집에서의 미국 시골생활 시작 김포공항을 통해 밤에 비행기가 뜨는 창밖을 보며 지난세월이 필림을 보듯 뒤로 빨리 지나가는데 찹찹한 마음으로 언제 돌아올건지, 진짜가는건지 생각하는 사이에 벌써 큰비행기는 공중에 떠 있었다 -실내에 들어가니 이렇게 큰 비행기가 공중에 뜰수 있는것이 신기 했다. 보잉747로 생각됨. 처음으로 타는 비행기고 오는길에 탄 에스컬레이터 (Escalator)도 마찬가지였다. 비행기 안에서는 계속 졸다가 - 잠이 그렇게 오는적은 드믈었고 중간중간에 깨워서 주위를 봐도 모두 자고 있었다. 문득 화와이 호노롤루(Honolulu) 공항에 도착하니 완전히 다른 풍경이 전개되었다. 말로만 들었든 열대지방의 풍경과 코에 밀려오는 공기가 조금 무겁고 탘탘했다. - 사람들 ..

친척 2016.07.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