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30년만에 가는 한국방문

William Beak 2017. 9. 10. 00:04



30년만에 가는 한국방문


30년만에 가게되는 모국방문..

무엇이 나를 한 자리에 뭊어 두었나 생각한다..

시간이 있을때는 돈이 없었고 돈이 있으면 시간이 없었다.

또한 다른 사정이 생기고 해서 강산이 3번이나 변할수 있는 세월..



몇년전부터 신중하게 생각한 방문계획이였고 두번이나

연기하면서 처음엔 설레든 마음도 어느듯 넘어야 할 산으로 생각되는 지금.. 

아법님 모시고 가야 되니 어떻게 두달 여정이 될지 

아니면 한달도 길게 생각될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는다.

이번은 아버지의 마지막 한국방문이고 내가 할수있는

마지막 배려인지 모르겠다.



19888월에 처음 혼자서 방문한 조국은 많은 변화를 느꼈다.

집집마다 냉장고가 있었고 서울거리는

사람들의 시간적 여유는 찿기 힘들었다.

88올림픽 직전인지 서울은 바쁘게 돌아가는것으로 보였다.




예전에 내가 살던 대흥동은 저녁오후에 길가에서 바둑을하고

주위에 둘러서서 보는 사람들, 한 여름밤에 육교위에서

돗자리 펴고 무더운 더위를 식히는 사람들, 천천히 걷는 걸음..



지난 7년동안 집 둘레에 뭉궁화를 심어서 지금은 집을 환하게 해줍니다..

한국인 모국을 생각하게 만든다.


미국오기전 4년의 서울생활은 주위로 걸어서 다닌 곳이고

한 겨울은 주말마다 새벽에 동네 친구가 부르면 일어나

장단지에 모래주머니를 부착해서 4-5명이 뛰기 시작했다.

차디찬 날카로운 겨울바람에 귀가 떨어지는 느낌이였다.

이화여대를 돌아서 산 언덕으로 숨차게 계속 뛰어서

도착한 절에서 흐르는 약수물을 마시면 얼음보다 더 차가웠다.

그런후 천천히 걸어서 산 중턱에 오르면 몇명의 아저씨가

목욕을 하는 관경을 뒤로하고 정상에 오르면 생각하고는

틀린 반반한 대지가 보이고 3가지 정도 할수 있는 운동기구가 놓여 있었다

5-6사람들만 보이고 서울시가쪽을 보면 일출과

함께 구름이 고층빌딩들 중간에 걸려있는 풍경은 서울시가

그렇게 아름답게 보인적은 없었다..



한번은 남산에 버스타고 간 기억도 있고

늦가을에 연대 뒷산에 가서 밤을 따러 갔었다.

노고산은 우리들의 노리터였고 겨울에 몇번 서강대에

가서 축구를 했고 가끔 캠퍼스를 둘러 보했다..


1년반의 초등학교 생활은 동네애들하고 잘 놀았으나

경성중학교 입학하면서 학교생활에만 시간을 보내서

추억에 남는것은 드물었다..

나의 출생지인 강원도 양구시 방산면은 민간인들이

사는 최전방이기에 전기도 없었고 수도물도 않들어왔다.

다행히 개울이 있지만 겨울에는 엄청난 고초가 따랐던

어머니의 삶이였을것이다.



공비가 자주 나타났고 원주민이 38선에서 훨신 북쪽이라

북한하고 예전부터 가까운 관계가 있는면도 있었다.

희미한 기억은 애들하고 산에 나물을 캔다고 가며는

군인들이 산에 여기저기 보초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한번은 어금니 통증으로 밤세도록 한잠도 못 자고 얼굴이 반이

부어서 군용트럭으로 산등선 비포장 도로 가다가 차 바퀴가 빵구나

한참 차에서 있다가 다시 돌아와야했다..

시냇가를 가로질로 큰 통나무가 놓여 있었고

겨울에는 얼음이 부터서 미끄러웠다.

걸으면서 밑으로 보면 군데 군데 얼음사이로

흐르는 물에 한 걸음 한 걸음 조심스럽고 무서웠다.



7년간 대구에서의 생활은 내 추억에서 제일 많이 남아있다.

대구에서 온지 몇달이 지난 초겨울 어머니가 두꺼운 실로

짜주신 오바를 입고 동갑내기 사촌과 여동생하고 가는데

30대쯤되는 아줌마가 와서 어느골목으로 우리를 유도하고

내 오바를 주면 사탕을 한가득 오바에 담아 오겠다고 해서

우리들은 마냥 기다렸다. 철둑 넘어서 간 그녀는 영원히

나타나지 않했다. 날씨는 쌀쌀한 초저녁으로 발을

구르면서 기다리다 어느듯 어둠이 깔렸고 도저히 더이상

못 기다리고 집으로 왔다.



학교에서 오자마자 두 친구하고 숙제를 나누어 해서 30분만에

끝내고 매일 바깥에서 노는 일과였다. 사시사철 동네친구하고

매일 정신없이 놀다가 배고파서 밤 7-8시에 집에 들어왔었다.

겨울엔 손이 다 트고 얼어서 아파도 놀았고 가끔 돈 생기면

만화방에 하루종일 있는게 꿈이였다.




한번은 구멍가게 하는 친구 영대가 자기 가게에서 빵 몇개를

가지고 우리 셋은 저 멀리 보이는 산으로 놀로 갔다.

무슨산인지 얼만큼 먼지 전혀 모르는 우리는 그냥 보이는

산으로 향해 1시간을 넘게 걸어도 저 멀리 계속 보여서 돌아와야 했다..


껌종이를 수집한다고 하루종일 시내를 해맷고

좁은 골목에서 축구를 하다가 공이 담 넘어가 유리창도 깼고

시간이 없어 다 못은 만화책을 길을 걸으면서 읽으니

지나가는 아줌마들이 저녀석들 공부를 저렇게 열심히 하면

얼마나 좋아라는 말을 들어도 전여 개이치 않했다.

7년이란 대구시절은 이렇게 정신없이 지나갔다..



10살때 혼자서 간 진주숯골은 야산을 뒤로하고 비장 도로에

농경이 보이고 그 너머 공설운동장과 진주시가 펼쳐보였다.



한번은 사촌형들과 남강에 갔었다.

화창한 날씨에 맑게 흐르는 강물가에 모래도 있어 너무 좋은 날이였다

수영을 전혀 못하니 사촌형이 나를 등에 업혀서 즐길수 있었다

한동안 업힌체로 하다가

내 혼자서 허리쯤 물이 오는 강가를 한발 한발 걷는데

갑자기 온몸이 물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정신없이 허우적

거리다 빠져 나왔고 주위에 가까이 있는 사람들은 아무도 없었다.

10초만 더 허우적하면서 못 나왔으면 물귀신이 되었을것이다.

너무 순식간에 일어났고 물이 입으로 들어가 고함지를 수도 없었다

지금도 그 순간이 강물만 보면 떠오르게 된다..



18년후 다시 주소만 가지고 혼자 찿았을때는 시내 가까이

있었던 야산이 없어졌고 집가까이 있었던 구멍가게에

10층이나 넘는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

예전의 모습을 찿기가 힘들었다.



내가 살았던 서울 대흥동 노고산 지역과

대구 중구 동인동 주위는 변화가 없었다.

한가지 이상한 느낌은 살았던 주위가 작게 보였고

축구도 했던 골목은 내가 두 손을 벌리면 다을 정도였다..



19888월에 처음 혼자서 방문한 모국3주였지만

서울에서 연희동에 계시는 이모님집에서 몇일을 지내고

3일간 진주에서 그리고 나머지는 사촌누나가 있는 대구에서

있었지만 시간은 너무 빨리 지나가서 한국의 아름다운 강산을

둘러 보지 못했다. 요번 여정은 8주를 잡아서 한국의 시골

마을들, 가을이 보여주는 강산의 풍경도 감상하고 싶다 .

특히 친척분들, 좋은사람들도 많이 만났으면 하는 바램이다.



그동안 부족한 제 블로그를 자주 찿아주신 불친님들,

들러주신 분들 감사 드리며 당분간 모국방문으로

포스팅을 못 할것 같으니 양해를 바랍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행복한 나날이 되시길 기원드리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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