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만에 모국 방문 29 – 봉화
안동하회마을에서 둘러보면서 점심을 먹었다.
그런후 봉화로 접어드는 길은 산이 많이 보이고
약간의 경사에는 사과나 인삼농장이 길가에서 즐비하게 보였다.
대구자형님의 고향마을은 내가 생각한거 보다 더 좋게 보였다.
주위로는 논에서 익어가는 벼를 볼 수 있는 농촌풍경을
뒤로하고 마을 입구 좌측으로 연못이 보이고 그위로 도암정이 있다.
우측으로 커다란 마을의 보호수로 지정된 느티나무와
전설의 집체만한 세개의 독바위가 우리를 반겼다.
도암정은 경상북도 봉화군 봉화읍 거촌리에 있는 건축물이다.
1984년 12월 29일 경상북도의 민속문화재 제54호로 지정되었다.
도암정은 송산 김흠의 손자인 김종걸이 만든 정자라고 한다.
조선시대의 문신 황파 김종걸이 효종 1년(1650) 무렵에
세운 정자로 당대 유림들의 교유, 토론, 풍류를 위해 지었다고 한다.
여름이면 도암정을 품고 있는 연못은
연꽃으로 가득하다고 하는데 너무 늦은 방문에
이미 연꽃은 자취를 감추어서 아쉬움이 남는다.
정자 앞의 연못, 인공섬, 큰 바위들과 노송 등
주변 경관과 정자가 잘 어우러져
당시 양반들의 안목을 엿볼 수 있는 곳이다. -위키백과사전에서
보호수로 지정된 300년 넘는 느티나무가 자리잡고 있다.
도암정
오른쪽에는 세개의 집채만 한 독바위는
마을의 풍요를 지켜준다고 한다.
단지바위, 독바위, 천년바위라고도 불리는 이 바위는
천년에 한번 기가 넘칠 때 바위의 뚜껑이 스스로 벗겨진다고 합니다.
그 때 바위 안에서는 황금빛 날개를 가진 학 한 쌍이
황금알 두 개를 낳고 날아간다고 합니다.
그러니 이 독바위는 지혜와 총명, 건강을 상징하는
모든 기를 뿜어낸다는 말도 있고
이 마을에서 수많은 인재가 나온 것을 마을 사람들은
이
바위의 기운에서 찾는 다는 말도 있습니다.
황전마을에서 가장 유명한 경암헌 고택이었다.
의성 김씨 종택인 경암헌은 원래 영양 남씨 종택으로
진사 남구수 선생이 건립했다고 한다.
그런데 남구수는 사위인 김흠에게 이 집을 물려주고
이후 남씨가 아닌 의성 김씨가 대대로 이 집에서 살고
황전마을은 350년 동안 의성 김씨 집성촌이 되었다고 한다.
대구자형님의 고향은 40가구쯤 되는 황전마을의 "황전"은
누른밭이라고 불리기도 했는데, 그 연유는 옛날에 이 동네
앞산에 황학이 떼를 지어 서식을 했다고 하며,
황학들이 마을 밭 에 내려와
앉아 있으면 온 들이 누렇게 아주 장관을 이루었다고 해서
그 모습을 보고 황전이라고 불렀다 한다.
동네를 둘러보면서 전기줄만 없으면 몇백전의
마을풍경 모습을 엿볼수 있었다.
들어가자마자 짐을 차에서 내려서 한 구석에 놓고
대구자형님은 마루를 걸래로 닦기 바쁘셨다.
나도 도우면서 땀이 날정도에 끝났다.
그런후 자형님은 저녁준비 하신다고 바쁘셨다.
저녁상 차리는데 도와주면서 조금 더웠던 날씨지만
마루에서 통풍되게 뒤 창문을 여니 적당했다.
식사를 하면서 마당이 보이고 집안 주위는 평화롭고 너무 조용했다.
식사후 나는 설거지 하고 자형님은 나무를 패기 시작하셨다.
도와 주고 싶었지만 도끼가 하나만 있어서 지켜만 봤다.
자형님이 말씀하셨다 여기는 시골이라 해가지면 밤에는
쌀쌀해서 아궁이에 불을 피우면 따끈한 온돌방에
아주 단잠을 잘수 있다고.
가마솥이 두군데 있어 불을 부치기에 한동안 바쁘셨다.
자형님이 언제든가 와서 살수 있다는 말씀을 하셨고
나의 제2의 고향이 될수있는 봉화의 황전마을.
자형님과 같은방에서 자면서 따끈한 온돌방이
너무 기분좋고 고국에서 첫 시골밤은 편안하게 깊어만 갔다..
2017년 10월8일 - 봉화
아버지와 함께한 8주간 고국방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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