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방문

아쉬움만 남겼던 첫 고국방문

William Beak 2019. 2. 20. 00:07




아쉬움만 남겼던 첫 고국방문


1988년 혼자 3주간 고국방문은 아쉬움만 많이 남겼다.


이모부님과 동갑내기 사촌이 마중나왔다.

이모는 연희동에 살으셔서 전두환 전 대통령 저택하고 가깝다고 하셨다.

그 다음날은 동갑내기 사촌이 63빌딩도 보여주고

서강대학을 가 봤다.


노고산에서 동네 친구들과 눈싸움, 태권도 배우고,

나무 조각을 깡통에 넣어 불 부쳐서 돌리고, 아카시아 나무가

많아 향기로운 꽃들이 눈보라 처럼 날리울때 마냥 뛰어 놀았다.

노고산은 우리들의 놀이 터였다.

가끔 노고산 넘어 겨울에 몇번 서강대에

가서 축구를 했으며 캠퍼스를 둘러 보곤했다.

1년반의 초등학교 생활은 동네애들 하고 잘 놀았으나

경성중학교 입학하면서 학교생활에만 시간을 보내서

추억에 남는것은 얼마 없었다.


신촌 로타리로 해서 4년간 살던 대흥동을 찾았다.

13년 동안 변화가 없어서 시간이 정지 된것 같았다.

어느 한 구석에서 동네 친구가 뛰어 나올것만 같았다.

1년 반 있었던 창천국민학교도 여전했다.


동갑내기 사촌이 자주 간다는 기원을 들였다.

서울대학시절때 바둑으로 1인자인 초단 실력의

동갑내기 사촌하고 9점을 깔고 두었다.

국민학교 2-3학년쯤 대구에서 둘이서 같이 두기 시작했다.

한번도 이긴적이 없었고 몇번 울화통이 나서 견디기 힘든적도 있었다.

동네 아저씨, 친구들과도 두었다.

예전에는 길가에서도 사람들이 모여 있으면 흔히 보이는 바둑게임.

그런 정겹고 여유있는 모습이 사라졌다.

바둑만큼 돈 걸지 않고 해도 격렬한 게임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 기원을 나와서 연세대학으로 발을 옮겼다.

예전에 연대 뒤산에 밤을 따러 갔던 기억이 스쳐갔다.

택시기사 말로는 연세대 근처는 하도 데모를 많이 해서

주위에 있는 나무잎들이 다 떨어졌다 했다.

연세대 입구는 학생들이 많았고 플래카드가 여기저기 있었다.

한 플래카드에는 북한이 세계에서 가장 크고 좋은 보육실을

가지고 있다고 자랑 하듯이 사진과 함께 적혀 있었다.

내가 자랄땐 반공교육이 철져했는데 하는 생각에 내 눈이 의심되었다.


그 당시엔 택시를 타면 합승을 많이 했다.

기억으론 서울에서 택시를 타고 혼자 왔다갔다 하다가

합승타는 분들이 있어 잠시 정신을 놓는 바람에

가지고 다니는 카메라를 택시에 놓고 내렸다.

택시에서 내린후 걸으면서 생각이 났지만 그때는

멀리 가버린 택시에 있는 카메라를 찾을길은 막연했다.

카메라 보다 사진을 담은 필림이 더 소중했다.

너무 아쉽게도 사진 한장도 없었던 3주간 여정이 되었다.


서울 이모집에서 3일 지낸후 사촌누나를 만나기 위해 대구로 향했다.

7년간 대구에서의 생활은 내 추억에서 제일 많이 남아있다.

다음날 사촌형과 예전에 살았던 두 집을 찾았다.

동인국민학교도 보였다.

모습이 그대로 여서 정겹게 보였다.

골목에서 동네 애들과 축구를 하는 장면이 떠오르고

공이 담 넘어로 가서 집 주인이 공을 식칼로 찟는다는 협박도 생각났다.

그런데 그 골목이 내가 두 손을 벌리면 다을 정도로 작아 보였다.


3일간 대구에서 있다가 18년만에 주소만 가지고 진주를 찾았다.

근처에서 이집저집 기웃거리면서 점잖은 분이 보여 큰아버지의

성함을 여쭈니 대번에 알아 보시고 눈물 나도록 한동안 꼭 껴안으셨다.



18년전 진주숯골은 야산을 뒤로하고 비포장 도로에

농경이 보이고 그 너머 공설운동장과 진주시가 펼쳐보였었다.

그런데 시내 가까이 있었던 야산이 없어졌고

집 가까이 있었던 구멍가게에는 10층이나 넘는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 예전의 모습을 찿기가 힘들었다.

다행히 친척분이 한자리에 다 모여서 너무 좋았다.


3일후 다시 대구로 와서 있을때 울산에서 오신

사촌누나 내외도 만나니 너무 반가웠다.

그런후 대구사촌누나 소개로 마음에 드는 여성을 만났다.

우리는 자주 만났다. 3주가 순식간에 지나가서 떠나기 전날

친척들이 준 많은 선물로 짐이 늘어나서 대구역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마침 서울로 가는 택시기사가 저렴한 가격에 이모님

집까지 갈수 있다고 해서 탑승했다.

그날 저녁에 그 여성이 서울로 찾아와서 몇시간 같이 시간을 보냈다.

그것이 마지막 만남이 될 줄 몰랐었다.


고국의 아름다운 강산도 제대로 둘러보지 못했다.

이모부, 이모, 진주에서 큰아버지, 큰어머니, 고모부 그리고 두 사촌형도

마지막 만남이였다는 걸 그땐 몰랐었다.

소중한 만남의 사진 한장도 없었다.

너무 아쉬움만 남겼던 첫 고국방문이였다..


1988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