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만에 모국 방문 10 - 진주로 간다
다음날 아침 진주를 가기 위해서 나는 작은 두가방이고
아버지는 가방 하나를 챙겨서 사촌누나가 운전해서
동대구 버스터미널의 10시반에 가는 버스를 놓쳐서 1시간 후에
있는 다음 버스라 시간이 있어 자형이 백화점과 위에 있는
테러스를 안내해 주셨다. 대강 본 백화점은 어마어마 했다.
테러스 위에서 대구시가 부분적으로 보였다.
테러스 위는 공원 비슷하게 꾸며져 아침과 저녁에
걸어다니면서 보기는 좋은 장소로 보였다.
30분쯤 있다가 백화점을 통해서 아래층인 버스터미널로
갔고 자형이 티켓을 사주었고 사촌누나는
가면서 먹으라고 음식을 싸주었다.
10살때 혼자서 간 진주숯골은 야산을 뒤로하고 비포장 도로에
농경이 보이고 그 너머 공설운동장과 진주시가 펼쳐보였다.
뒷간을 갈려면 외양간을 지나가야 되는데
큰눈을한 소가 가만히 나를 주시하는것이 무서웠다.
큰어머님은 항상 집안일 하신다고 분주하셨다.
그때의 할아버님은 한복에 갓을 쓰시고 손을 뒤로 하시고
나가시는 모습이였다.
사촌형들과 매일 놀면서 여름방학 두달은 빨리 지나갔다.
그리고 아버지 한테 들은 할아버님 이야기는
할아버님은 숯골고을에서 친구분하고 두 어른신이여서
누구라도 앞에 허리 궆혀 정중이 인사를 안하면 혼이났다.
간접적으로 마을을 통치 했다고 본다.
그러시다 한국전쟁의 북한 남침으로 8월달에는 진주까지
공산당이 침범해서 밤마다 아녀자들을 모아서 모임하고
농사에서 수확이될 곡물을 일일이 조사하고 해서
할아버님은 보다 못해 아녀자들 모임을 방해 하셨다.
공산당은 할아버지를 감옥에 가두셨고 마침 높은 공산당
지휘관이 예전에 서당친구라 풀려났다.
그런후 할아버지는 아녀자들 모임이 있을때 마다 방해를 하셨고
공산당들이 참다가 못해 다시 감옥에 집어 넣었다.
이번에는 서당친구는 인천상륙때문에 먼저 후퇴를 해서
할아버님은 감옥 신세를 면하지 못했다.
조금후 공산군이 철수하면서 30명 감옥에 있는 인사들을
굴비처럼 엮어서 행군을 해야 되었다. 하루종일 일행은
걷다가 평평한 산 중턱에 도착했는데 30명을 밧줄로 묵인체
조금만 앉아 있으면 저녁을 준다고 기다리고 있는데 따발총으로
난사해서 할아버지는 밑에 깔리면서 구사일생으로 살아 나오셨다.
그후 화병에 걸리셔 여러가지 약을 드셨지만 시름시름 하셨다.
두번째로 1988년 주소만 가지고 혼자 찾았을때는
어렴풋이 기억나는 살짝 경사진 콘크리트로 들어가는길
양쪽으로 집이 있으나 우측에 있는 집은 반이 푹 꺼져 보여
밤에 잘못하면 떨어질 위험이 있어 기억에 또렷이 남아있다.
눈에 익숙한 길을 따라 마지막 집을 도착하니 연세가 지긋하신
분이 계시길래 성함을 대고 물었더니 대번에 알아 보시고
나를 껴안고 한참 있었다. 큰아버님은 그날밤 가까이 있는
친척들을 다 모이게 하시고 빈손으로 간 나에게 양주를 권하셔서
반병을 혼자 다 마신것 같았다. 이야기 하고 노래하고 밤이
가는줄 모르게 놀았다. 다음날 아침에 과하게 마신 나를
너무 따뜻하게 대해주시고 맛있게 아침을 먹었다.
그런후 주위를 둘러보니 시내 가까이 있었던 야산이 없어졌고
집가까이 있었던 구멍가게에 10층이나 넘는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서 예전의 모습을 찾기가 힘들었다.
아버지는 1993년 방문하시고 연락이 없었다.
마침 내가 아는 분이 진주에 살으셔서 옛주소로 두번이나
찾았으나 행방불명이였다. 친가쪽으로는 대부분 진주에 살기
때문에 한분만 찿아도 다 연결이 되어서 쉬운면도 있으나
24년간의 연락이 두절된 처지라 어떻게 될지 짐작을 못하겠다.
이런저런 생각에 버스는 고속도로를 빠져 나와 진주시로
들어가고 있었다. 10분쯤 시를 들어가 마침내 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아버지와 나는 버스에서 내려 택시를 타고
남강다리를 건너 무지개 아파트에 도착했다.
2번째 방문 했을때에 무지개 아파트에서 천천히 걸어서
주소를 보고 찿아 갔으나 지금은 아파트 근처에 있는
구멍가게에 들리기로 했다. 대강 아버지가 가게 아주머니
한테 물어 보니 모른다고 하고 17년간 가게를 하고 있다고 했다.
가게를 나와서 어떻해야 하나 생각하면서 도로가를 걸어 가고
있는데 마침 앞에 택시에서 내리는 할머니가 있어 아버지가
여쭈어 보았다. 대화를 통해 이고장에서 오래 지내셨고
큰아버님의 큰아들과 먼 친척이 될수 있다며 큰아들 집을
가르쳐 주었다. 고맙다고 인사를 한후 가르쳐 주는 중간쯤 가니
우측으로 눈에 익은 콘크리트로 들어가는길이 보였다.
혹시나 해서 그길로 끝집으로 가니 문이 잠겨 있었다.
문의 벨을 누르고 기다리고 있으니 잠시후
누가 나오는 기척이 들렸다..
2017년 9월22일 진주로 가는 길
아버지와 함께한 고국방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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