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방문

30년만에 모국 방문 11 - 진주에서

William Beak 2018. 2. 22. 00:03



30년만에 모국 방문 11 - 진주에서


누구시요? 하면서 문을 열고 나왔다.

아버지가 큰아버님 성함을 말하고 자신 이름도 대니

그제서야 알아보고 자기는 큰아버님의 큰아들이라면서

집안으로 안내했고 두분은 마루에 앉아서 한참 대화를 하셨다.

주로 아버지가 친척분들을 이름 하나하나 대면서

어떻냐는 질문이고 큰형님은 답변을 해나갔다.

2시간쯤 오가는 대화에 나는 바깥에서 서성거리면서 반쯤 들었다.



들은 대화속에 조부모님은 9남매를 두셨으며 다 고인이

되시고 아버지와 고모만 남았으니 아버지의 표정은 절망에

참담한 모습을 볼수있었다.

~ 이럴수가 무심한 세월이 이처럼 뼈속까지 찔려오는

나의 절망감에 비참함을 느끼는데 아버지는 어떤심정인지

상상을 하기 힘들었다. 그뿐만 아니라 큰아버님은 세 아들을

두었고 마지막으로 두 딸이 있는데 막내가 나하고 동갑내기였다.

그런데 두 아들도 이세상 사람이 아니라니 이럴순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 사촌형은 내가 좋아했던 형님들이였다.

잘생긴 얼굴에 하얀피부의 모습이 희미하게 생각나고

나를 잘 대해주셨다.



큰형님의 연락에 저녁무렵에 고모와 두 사촌 자매가

나타났다. 다행이 이번에는 내가 어느정도 준비해간

선물들을 내어 놓았다. , 비타민, 혈압기, 은전,..

아쉽게도 많은 친척분들이 사라졌지만 지금이라도

얼마남은 친척들과 남은 인생을 자주 연락하고 왕래를

하면서 살아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날 아침 큰형님 아들이 차를 가지고 큰아버님 묘지인

국립산청호국원를 찿았다. 큰아버님은 한국전 참전용사라

여기에 자리를 할수 있었다고 한다.



강산도 변하고 사람도 없어지는 세월속에 무엇이

서로를 힘들게 했기에 그동안 미국촌 구속에서

살게 했나 하는 생각도 들어온다.

고국에 와서 처음으로 느껴보는 좌절감, 죄책감이

나를 감싸고 우울하게 만들고 있었다.

나중에 아버지는 말씀하셨다.

재물은 없다가도 있고 있다가도 없어지지만

사람은 영원히 없어진다..



2017923일 진주에서

아버지와 함께한 고국방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