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만에 모국 방문 9 - 이모님 묘지를 찿아서
사촌형은 아파트에 도착해서 자형과 아버지 그리고 나도
함께 차에 타고 조금 있으니 대구시가지를 벗어나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40분쯤 가다가 꾸불꾸불한 산길로 접어들어
20분간을 들어가니 산 반을 깎아서 만든 커다란 묘지가 보였다.
이모님이 천주교 신자여서 천주교에서 소유하고 있는 산을
개조해서 엄청나게 큰 묘지를 만들은 산 언덕에 있었다.
차에 내려서 천천히 걸어 가면서 양지 바른 곳에 계시는
한 많은 세월을 살아 가셨던 이모님이 보이시는 것 같았다.
외조부는 평양에서 부유한 집에서 태어나신 거로 안다.
하지만 목사가 되면서 평안북도 작은도시나 마을에서
목회를 하셨고 혼자서 살수 있는 생활은 되었지만
가정의 생계를 해결 할수는 없었다.
더구나 독립운동에 가담해 만주를 오가며 계속 일본순사들
한테 쫓기는 생활을 하시다가 잡혀서 감옥에서 옥살이를 하셨다.
드디어 바라던 조국의 해방이 되었으나
공상당 정권아래 다시 쫓기는 생활은 계속되었다.
너무 위험해서 한국전쟁이 나기 일년전 1949년에
단신의 몸으로 월남하셨고 마지막으로 편지와 함께
상인을 통해서 물감과 필수품 몇가지를 보내 왔다고 했다.
그런후 영원히 찿을수가 없었다.
외조모는 가족 생계를 위해 거리에서 장사를 했어야 되었고
그것도 부족해서 장녀인 이모님이 평양에서 오가는
열차안에서 어린나이에 장사를 했다고 한다.
그러다 일사후퇴때 가족이 피난왔고 조금있어 어린 꽃다운 나이에
이모님은 시집을 가서 시어머님을 모시고 다섯 자녀를 두었으며
가난은 떠나지 안았다.
이모부님의 월급이 턱없이 부족해서 보따리 장사에서 부터
뜨개질등 닥치는대로 하셨다.
그래도 초라한 판자집에서 많은 식구가 생활을 해야했다.
다섯 자녀중 막내가 내 동갑내기고 한때는 동인국민학교에서
같은 반에 있었다. 1988년 모국방문시 나한테 말한적이 있었다.
너무 가난해서 국민학교때 육성회비 줄 돈이 없어서 학교가면
선생님이 독촉하는 바람에 학교 가기가 힘들었다고 했다.
나중에 동갑내기는 서울대학에 갔지만 나는 그렇게
가난에 시달렸는지 몰랐다.
한번은 이모님 집에서 동갑내기 사촌하고 바깥에서 놀고 있는데
집안에서 어머니와 언성을 높이면서 말씀을 하시는데
다른 이모님 말씀은 기억에 없고 이말씀만
이모님을 생각하면 몇년전부터 자주 떠오른다.
이모님의 말씀은
"내 온 몸이 산산히 부스러진다 해도 애들은 훌륭하게 키울것이다".
자녀들을 위해 남은 인생을 헌신해서 다섯 자녀들은
다 대학에 갔을뿐 아니라 서울대학, 고려의대..
경북여고를 수석으로 졸업한 대구에 사시는 장녀인 사촌누나는
장학금을 받고 간호대학을 졸업한후 간호사로 일하시다가
자형을 만나서 결혼후 그만두고 자녀를 키우면서 두 아들은
서울대를 갔고 딸 하나는 의대를 갈 정도로
자형님과 열심히 하셨고 6년전에 남들은 은퇴할 나이에
다시 간호사로 야간 근무하신다.
나는 한 동네 사시는 이모집에 놀러갔었다.
두 누님과 두 형님 그리고 동갑내기가 있는 초라한 판자집이지만
우리집은 나보다 3살 어린 여동생 그리고 6살 어린 남동생은
어쩌다 내가 잘못 건드리면 울고, 울고 있으면 어머니가 와서
항상 나만 나무라서 상대도 안했다. 우리집은 한적하게 느껴서
항상 동네친구들 하고 놀던가 이모집으로 가면 북적이고
사람의 삶을 느끼게 해서 좋았다.
이모집에서 사촌누나가 맛있게 해주는 점심을 먹고
재미있게 놀고 오던가 아니면 저녁을 먹고 자고 왔다.
한 많은 삶을 보내신 이모님
온몸을 헌신해서 자녀들을 키웠기에 오늘날의
밑거름이 되었으나 자신의 건강을 안돌보셔서 일찍 돌아가셨다.
자녀들을 다 키우신 후에는 형제들이 보고품에
대구보다 공항에서 더 가까운 서울 연희동에서
먼 땅 미국에 사는 두 남동생과 여동생(내 어머니)을
혼자 남아서 있는 고국에서 한없이 기다렸다고 한다.
이제는 저 세상 가셔서 편안하게 지내시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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