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FAMILY

나는 내일 죽어도 후회가 없다.

William Beak 2017. 1. 19. 22:50




나는 내일 죽어도 후회가 없다.

큰아들이 나한테 하는 말이였다.

I have no regret even I die tomorrow.

청천벽력한 아들의 말에 하늘이 노랬다.

이때가 20059월 가을, 14살된 아들.





나는 믿음은 없었지만 성당에 가면 웅장함, 장엄함, 엄숙함에

고개가 숙여지고 침묵이 마음에 다가오는것을 느꼈다.

다른 장소는 도서관이다. 도서관을 찿을때마다 내 마음은

안정을 찿고 마음이 편해진다. 지식이 담아 있는 장소,

인류의 흔적을 남기는곳, 내가 모자라서 채워질수 있는곳이라 생각되었다.


Poughkeepsie Library

그런 생각으로 애들이 자라면서 도서관을 자주 시간이 되면

찿았고 그덕택에 애들도 책하고 가까와 진것 같았다.

그다음은 가까이 있는 한인 교회를 찿았고 한때는 자주 다녔다.

그래서 처는 성가대에 있었고 성경공부에도 가담하게 됐었다.


여기 있는 한인교회는 1970년즘 초창기 미국인 교회를

목회 하시면서 오후반은 한인 목회를 하시었고

몇분의 이민생활에 서류도 봐주시고 실력이 있으시며

항상 바쁘셨던 존경스런 목사님 덕택으로 한인교회가 시작되었다.

키도 크시고 미남이시며 한국에서는 레디오

어나운서까지 하셨으니 목소리도 참 좋으셨다.


나도 일찍이 몇번 가보았지만 내같은 또래는 없고 대부분

나보다 5-10살 어렸다. 운전 1시간 거리로 50가구쯤 한인이

있었는것 같다. 대부분의 직업이 의사였고 6가정은

부부가 의사였다. 그다음으로는 IBM에 다니는 분들이고

이상하게도 우리같은 서민은 소수였다.



내가 가정을 이루고 교회를 찿았을 때는 1990년으로

생각되며 다른 목사님으로 되었으며 퍼킵시에 독립된

한인교회가 있었다. 한인가정도 100가구로 늘어났고

의사가정과 IBM다니는가정이 비슷한 숫자였고 우리같은 서민은

아직도 20프로도 안되는것 같았다.



처음에는 한달에 한두번 가는 교회를 10년 동안 애들이

자라면서 자주갔었고 큰애가 12살되던 2003년도에는

거의 주말마다 가게되었다. 두 아들도 공부하는데는

지장이 없는것 같이 보였다. 난 애들이 학생으로서 잘하면 게임을 하던

티비를 보던 상관을 안하는 성격이라 내 자신이 자랄때 어머니

잔소리를 싫어 했던지라 애들 한테도 왠만하면 무심한척 보였는지

모르지만 잔소리 안할려고 노력했다.


그러던 20059월 큰애가 만 14살되고 9학년이

되던해 이때까지 평균 95점 유지했고 아너크래스 honor class

계속 택한 애가 수학시험을 78점 받았다.

그뿐만 아니라 말도 않듣고 내말 한마디 한마디마다

말대꾸하고 잘 타일려고 해도 말을 전혀 않듣고

반항심만 커지고 있고 한번은 내앞에 주먹을 움켜쥐고

눈에는 증오의 감정을 보이며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나는 엄청 놀랐었다. 다른애를 보는것 같았고 내가

그렇게 잘못 키우지는 않했는것 같았는데 그사이에

너무 변한 큰아들, 실망과 어디서부터 잘못된지

수 백번 생각했다. 지난 몇년동안을 거슬로 올라가서

어디서 부터 잘못되었나 생각끝에..


큰아들이 한동안 한인교회에 너무 빠져 있다는 결론이였다.
그 당시 교회목사가 청소년들이 교회를 잘 나오다가
대학교를 가면서 교회를 않나온다고 해서 청소년 예배는
따로 있었고 토요일은 가족과 같이 있는 시간을 무시하고
토요일과 일요일 이틀 모두 주말마다 교회에 보내게 했다
는 교회라 모두 믿었고 미션으로 멕시코까지 보내는 비용과 
다른 활동도 전폭적인 지원을 해 주었다


그러길 2년세월이 지나면서 큰애가 14살된해에 나한테 말하기를 
자기는 내일 죽어도 후회가 없다고 한다.

I have no regret even I die tomorrow.
나는 그 말을 듣는 순간 하늘이 노랗게 보였다.
교회에 다니시는 심리학 박사분 의래로 시험을 본 결과
우울증이라고 하였다. 그런후 수없이 타일러봐도 반항심만
더 나타내서 내가 마지막 결정을 내려야 했다.


나는 생활태도가 중요하다고 여겨서
지금부터 아침5시에 같이 식사하고, 주중에는 티비 못보고
일주일에 3번 아빠하고 운동하며
같은 종파의 미국교회를 다닌다고 선언했다
만약 안되면 내처가 직장을 그만두고 다른 주로 이사를 
갈 각오까지 생각했다.



다행히 큰아들과 처와 작은아들까지 잘 따라 주었고
미국교회는 신사적이고 믿음을 강요를 않했으며
일요일 2시간만 교회에서 보내고 나머지 시간은
가족시간을 보내도록 하는 한인교회와 대조적이였다.


나는 생활태도가 중요하다고 생각한 결론으로
아침 준비는 나와 처가 교대로 3년간 하였고
큰아들의 행동이 반항, 분노에서 안정과 긍정적으로
전환이 되었다. 공부도 9학년때 평균 87, 10학년때 92,

11학년때는 95점으로 다시 돌아왔다.
그후 미육군 사관학교도 입학 할수있었다.




나는 말하고 싶다. 병원도 좋은 의사가 중요하고,

학교도 잘 가르치는 교사가 필요하고, 교회도 올바른 목사를

간절히 원한다그렇지 않으면 오히려 없는것 보다

못할수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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