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대학생활
시작 UB University at Buffalo
긴여행을 끝내고 한방중에 찿아들어간 기숙사
스폴딩Spaulding이라는 제일 큰 3200명에 달하는
에리캍Ellicott Complex안에 있었다.
모든시설을 갖추고 있는 기숙사에서 겨우 내가 신입생으로
지내야할곳을 찿아간곳은 큰방에 코너마다 자리차지해
네명있는 곳이였다. 잘 기억은 안나나 지친몸에 그냥 들어가서
자고 일어나니 아직 두 침대는 비워 있었다.
나는 이민가방에서 전날밤에 담요만 빼냈으나 나머지를
꺼내서 대강 정리를 하고 간단한 샤워를 한후
학교식당에 가서 아침을 먹고왔다. 그런후 캠퍼스 지도를
꺼내서 대강본후 학교책방을 나섰다. 학교버스 타는데로
가서 기다리면서 스케줄을 보니 주말에는 30분만에 오고
주중에는 10분마다 다닌다고 나왔다.
학교버스로 20-30분쯤 걸려서 도착한 남쪽캠퍼스는
오래된 빌딩이 많아 북쪽캠퍼스와는 대조적이였다.
조금 걸어 학교책방에서 필요한 책을 몇권 샀는데
책한권에 30-40불했다. 그런후 기숙사가 있는 북쪽 캠퍼스로
돌아왔다. 기숙사 방에 돌아오니 2명의 룸메이트 roommate도
있어다. 간단하게 인사하고 점심먹으로 식당에 내려갔다.
한달전에 견학을 갔을때는 마침 학교에서 주선한
버스 두대가 뉴역시티 Central Park에서 출발한다고 해서
어머니와 큰외삼촌이 대려줘서 이틀밤을 지내고 돌아오는
뉴욕고속도로New York Thruway에서 종점 100km전에 부탁을해서 나혼자
내려서 3km길을 걸어 공중전화로 통화해서 외숙모가 pick up했다.
- 옛전 1979년때라 공중전화를 쓰는 시절이고 장거리 통화도
요금이 1분 통화료가 1불쯤 되었다.
그당시 캠퍼스 견학할때 대학교가 엄청나게 크다는 것을
느꼈고 건물들이니 대지가 내가 다녔던 고등학교 보다
100배는 되는것 같았고 학교 자체가 작은 타운이였다.
걷고 또 걷고 버스타고 또 걸었다.
광야에서 펼쳐진곳에 시야 사방이 평평한 버퍼로
미서부 전체가 락키 산맥 Rocky Mountain이 있는
코로라도 Colorado 까지의 대지
미국의 땅 1/3이나 되는 끝없이 전개되는 옥토의 땅덩어리다.
나중에 알았으나 대학생수가 2만명과 대학원생은 1만명이나
되고 원만한 전공은 박사학위까지 있으며 미북동쪽에 있는
공립대학으로는 제일 큰 학교였다.
1846년에 13대 전대통령인 필모아 Millard Filmore 가 사립대학으로 설립
1962년 뉴욕주립대학 SUNY The State University of New York으로 속했다.
1980년대 당시 한인 대학생은 대부분 나처럼 이민자고
뉴욕시티에서 왔으면 100명쯤 되었다. 한인 대학원생은
한국에서 온 유학생이고 한국에서 군대도 갔으며 직장생활
아니면 석사과정을 맞치고 해서 보통 한인대학생에 비해
7-10살이 더 많았고 100명쯤 되었다.
캠퍼스를 돌아다니며 느낀것은 동양사람도 몇천명되고
대부분 중국계통이고 그다음 인도애들 가끔 한국말 소리가
들렸다. 대학생활하면서 느꼈지만 다른나라에서 온 유학생들도
많았다. 내가 졸업한 시골학교에는 95프로이상되는
백인학생들과는 대조적이였다.
학교는 시작되고 수업반은 30분떨어진 오래된 남쪽캠퍼스 나머지는
기숙사에 가까운 북쪽캠퍼스에 있었다.
수업도 반은 600명나마 앉을수 있는 큰강의실은 뒤에 있으면
칠판에 쓰연 글씨가 콩알만큼 보이므로 10분 미리가서
가까운 자리에 참석하는것이 좋았다 나머지는 300명쯤되는
강의실 그리고 30명쯤 되는 실험실이였다.
처음으로 필수과목인 컴퓨터 프로그램 폴트랜 Fortran 택해야 되었다.
프로그램을 짜서 한줄마다 카드로 펀치하는 기계를 걸쳐
카드를 다 모은다음 컴파일 compile하러 갖다주면 컴퓨터가 읽는
식이였다. 카드를 펀치하면서 실수가 많아 필요한 카드보다
두 배이상 수요되었다. 그 다음해는 카드가 필요 없이
지금처럼 각 컴퓨터가 있어 직접 기입과 수정을 할수있었다.
화학 실험은 토요일 아침 8시에 있어 6시에 일어나 준비해서
30분마다 오는 학교버스에서 30분 그리고 10분 걸어야했다.
이 과목의 스케줄 schedule은 두고두고 후회했다. 남들은 금요일밤을
친구들과 놀던가 늦게까지 편안하게 즐기는데 나는 할수 없었다.
나는 보통 10-11시밤에 자서 아침5-6시에 일어나는데
다른 룸메이트는 더 늦게 자면서 소란도 피우고 씨끄러워서
내 시간에 못 자므로 간단한 줄넘기를 복도, 라운지에서 했다.
내가 줄넘기를 하니까 몇일후 몇명이 따라했다.
우리층에 사는 학생은 2명만 2학년이고 나머지 12명은
신입생이며 대부분 뉴욕시티, 롱아일런드에서 왔다.
신입생이고, 먼데서 와서 그런지 갑자기 찿아온 자유의 느낌에
매일 라운지에서 항상 모여 장난과 잡담만 하는걸 보았다.
나도 가끔 끼어서 놀았다.
큰 에리컷은 모든 기숙사가 일층으로 연결되었고
이층은 테러스 terrace로 바깥으로 연결되었다. 그러므로 일층에는
많은 학생들이 왕래하고 날씨가 좋으면 이층도 분볐다.
두달가까이 지날무렵 어느날 자주 다니는 일층 벽보에
크게 한글로 한인의 밤이 Korean Night라고 쓰였다. 보는 순간 내 심장은
멈추는것 같았다. 4년이 지나서 처음 보는 한글!!!
너무나 감개무량했다. 눈물이 나오느것을 참으면서
자세히보니 한인학생회에서 주최해서
언제, 몇시에, 어디서, 한인 대학생과 대학원생을
환영한다라는 말이 적혀 있었다. 얼른 공책에 적었다.
그러면서 하루하루 지내면서 빨리 금요일밤이
오기를 기다리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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