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밤의 인연 – 미국대학생활
UB University at Buffalo
마침내 기다리던 금요일의 한인의 밤은 왔다.
확실한 기억은 안나나 8시 아니면 9시쯤 되었다.
나는 보통 옛전부터 시간보다 5-10분 일찍가는 습관이 있었다.
10월달말이라 바깥 공기는 쌀쌀해서 제킷을 걸치고 나섰다.
찿아간곳은 내가 있는 기숙사하고 멀지 않았다.
그당시는 가끔 담는 사진 좌측부터 내가 있고, SH, YJ 그리고 YS친구
입구에 들어서니 큰 라운지에 50-60명이 있을수 있는데였다.
신입생 한인대학생과 대학원생을 마련해준 자리였다.
일찍가서 그런지 열명남직한 한인학생이 눈에 뜨였고
조금 어두운 조명이라 가까이 가야 잘 보였다.
몇발자국 걸으면서 둘레를 보고 있는데 우측으로 두 학생이
나를 주시하는 느낌을 받았고 서로 눈이 마주쳤다.
인사를 나누고 YS라는 학생이 대학원생이냐고 물었다.
그당시는 젊어서 성숙해 보이는 것은 좋았기에
싫게 들리진 않았다.
둘다 자그만 165-167cm했다. 나중에 더 느꼈지만 내가 생각하는
중간 170-175cm키는 드물었고 나처럼 조금 큰키의 177-181cm이였다.
YS는 나보다 2살 많았고 같은 신입생이며
SH는 1살 많으나 플라스버그 Plattsburg에서 전학온 2학년이였다.
SH는 파마를한 곱슬머리 같았고 경상도 사투리의 억양을
느꼈으며 약간 마른 체격이였다.
우리 셋은 간단한 통화로 시작된 대화는 생각없이 진행되었고
옛전에 만난 친구처럼 있는말 없는말 그대로 순수하게
다 털어놓고 대화하기는 처음이였다.
내기억으론 1시간 안된 대화지만 내평생에 처음으로
느끼는 감성이였다.
정신없는 대화로 주위에 누가왔는지 몇명이나 더 왔는지
몰랐다. 그러다 두 친구는 같은 룸메이트고 남캠퍼스에서
산다고 했다. 그말이 있은후 우리 셋은 거기서 나와
두 친구가 있는 기숙사에 동행을 했다.
버스를 타고 15분 걸어서 같이 간 기숙사는 10층이 넘는
굳이어 Goodyear 며 건물이 오래된 느낌을 받았고 둘이서 쓰는 방이였다.
한시간 더 말하다가 다음날 원망스러운
화학실험실 수업이 있어 돌아가야했다.
그런후 토요일 아침8시 수업이 끝나면 25분 걸음 거리를
들리곤해서 한달안에 친한 친구사이로 되었다.
몇주가 더 지나서 YS가 내게 말했다.
아는 한인학생이 있는데 캠퍼스 밖에서 살며
그 친구한테 가면 김치찌개등 한국음식을 먹을수 있다고 한다.
석달을 입에도 못된 한국음식이라 얼른가자고 했다.
10분을 걸려 큰길 Main Street건너서 도착한 가정집에 미국노인하고
같이 생활하는 또 다른 학생을 만났고 몇주안에 친하게
되었다. 그 친구는 보통키에 나하고 한동갑이며 2학년이고
건축학 전공을 한다고 했다. 목소리가 큰편이면 화통해
보이는 그는 YJ였다.
한인회사에서 일하면서 한국에서 오신 손님과 함께
Empire State Building위에서, 좌측은 내모습
SH란 친구는 일년반후 전기공학을 UB에서 공부하다가
플라스버그 Plattsburg에 다시 돌아가서 물리학으로
학사를 맞치고 미해병대 Marine ROTC로 있으면서
한국에 가서 옛고향 동네 여자와 결혼을 하였으며
두 아들을 두었다. 내가 다시 만났을때는 1986년
내가 한인회사에서 1년간 Long Island 에 있는
Port Washington에서 일할때였다.
내가 1986년 가을 한인회사를 그만두면서 나보다 한살어린
그 친구동생을 소개해줘서 내일을 하게 되었다.
체격은 내만큼 되었고 FBI로 Houston에 일을 할수 있었으나 자기가
원하는 뉴욕시티는 대도시라 경험이 많은자가 한다고 했다.
그때 SH친구는 미해병대 대위로 제대해서 한국외한은행에 다녔다.
1989년 5월 친구가 전화와서 신입여사원이 둘 왔는데 하나는 키가크고
다른 하나는 키가 적다고 하면서 생각있냐고 물었다.
나중에 키큰여사원은 그친구 남동생하고 결혼하고 나는
키작은 여사원을 1년후 아내로 맞아 드렸다.
그후 SH친구 두 아들은 둘다 웨스트포인트에서 졸업했다.
YS란 친구는 컴퓨도 전공하면서 한국에서 온
간호원가 사랑에 빠졌다. 너무 빠져 마지막 나하고
같이 캠퍼스 밖에 off campus아파트에서 지내다 나의 설득에도
만무하고 중도에 그만 두었다. 이친구는 나중에
프러싱에서 만화방을 한동안 해서 내가 자주 들렸다.
한번은 1980년 겨울방학을 통해 기차를타고 내려갔다.
친구는 Grand Central Station에 마중 나왔었다.
친구의 부모가 야채가게를 해서 겨울에 새벽 3시쯤
야채를 사러 도매상Huntspoint로 3번 동행하고 도와주었다.
간 곳은 부두가 가까이 있고 규모가 엄청났다.
한겨울이고 바닷가 가까이 있어서 매섭게 몸에
파고드는 겨울바람을 느꼈다.
모든 뉴역시티 야체는 여기로 통해 들어오니
큰빌딩도 여기저기 있고 같은 종류의 도매상 과일들이
엄청나게 많이 한곳에 모여 있었다.
친구는 현찰로 필요한 과일을 구매하는데도 4시간 걸렸고
트럭에 다 실고 가게가 있는 맨해턴에 물건들을 내리고 하니
아침 9시가 되었다. 3일간 하면서 야채가게 하는일이
얼만큼 힘든일인지 느낄수 있었다.
YJ이란 친구는 나중에 포스팅 하고 싶다.
지금도 볼수 없는 처지가 되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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