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방문

30년만에 모국 방문19-진주성

William Beak 2018. 9. 27. 00:30




30년만에 모국 방문19-진주성



아버님 말씀으론 예전에는 남강의 물이 아주 맑고

반 만 차있고 눈비시게 빛나는 백사장이 길게 강물따라 있었다고 했다.




정문인 촉석문으로 들어가 좌측으로 큰 우물과 창고가 있었는데

다 없애고 예전의 모습이 사라져 안타까워 하셨다.




아버지와 같이 논개를 모시고 있는 의기사를 본후

남강쪽으로 발길을 돌려 논개가 왜장을 안고 투신한 의암도 내려 보았다.




의암으로 내려가는길은 가파르지 않았고 안전하게

펜스도 없어서 애들한테는 위험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 말씀으론 의암이 좀 더 위쪽으로 있었으나 많은 세월에

저절로 움직여 옮겨져 왔다고 하셨다.


아버지의 말씀을 들으면서 천천히 둘러보니

관광하는 기분이 아주 좋았다.



발길은 다시 올라와서 촉석루를 거쳐서 정문을 지나

언덕위에 위치한 임진대첩계사순의단을 계단을 올라가서

보니 크게 자리잡고 있었다.



임진대첩계사순의단 둘레를 천천히 본 후

아버지가 안보여서 강한 해빛에 그늘진 벤치가 앉아서 기다리고 있었다.




20분을 기다렸으나 나타나지 않으셔서 다시 올라가서

둘러봤으나 없으셔서 온 사방으로 찾기 시작했다.



1시간을 찾아도 온데간데 없이 사라져서 난감했다.

할수없이 생각다 못해 후문인 공북문을 나가니 안내소가

있어 자초지정을 말하니 스피커로 통해 성함을 말하면서

찾는다는 방송이 나가고 20분이 지나도 나타나지 않으셔서

다시 스피커로 부탁했다.

20분이 더 지나도 나타나지 않으셔서 다시

사방으로 찾기시작했다. 찾기 시작한지 2시간이

지났을때 다행히 저기서 천천히 걸어 오시는 모습이 보였다.

만나서 대화를 하니 아버지가 만약 잃어버리면 어느 장소에서

만나자고 말했다고 하셨다. 난 못 들었다..

2시간 찾는다고 정신없어서 반쯤 본거 같으나 기진맥진 해서

더이상 둘러볼 심정이 없었다..


1592(선조25) 임진왜란이 터지자, 그해 10월 성내에서는

1차 진주성 전투가 발발했다. 1차 진주성 전투에서는 당시 진주목사 김시민이 

이끄는 3,800명의 군사와 1천여 명의 의병으로서

3만 여명의 일본군을 섬멸하여 대승을 거두었다.

이를 제1차 진주성 전투라고도 하고 진주성대첩이라고도 한다.

1차 진주성 전투는 임진왜란 당시 조선군이 왜군을 크게

물리친 전투 중에서도 이순신의 한산도 대첩, 권율의 행주산성대첩과

함께 3대 첩승의 하나로 꼽힌다. 일명 임란 3대첩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다음 해인 1593(선조 26) 6월 일본군은전년의 패배를 설욕하려고 

10만 여명의 대군을 이 끌고 다시 진주성을 진공하였다.

진주성은 함락되고 7만 민관군이 함께 순절하는 비운을 겪었다.

성이 함락되자 진주목사 서예원은 살해되고, 경상우도병마절도사 최경회

의병장 김천일 부자고종후 등은 패전의 책임을 지고 진주 남강에 투신 자결하였다.

왜군은 항전에 생존한 2~3만에 달하던 성민, 피난민들도 일거에 학살하였다.

1592년 진주대첩의 승전과 1593년 전몰한 7만 민관군의

넋을 기리기 위한 임진대첩계사순의단이 있다.


1930년대에 조선총독부 토지국은 진영 못을 매축하면서 진주성 외성 모두와 

내성 일부를 헐어 그 공사에 충당해 버렸다.

1960년 촉석루 복원을 시작으로 1969년부터는 박정희 대통령의

특별 지시로 진주성 복원사업을 추진하였다.

1972년 촉석문을 중건하였고, 1975년에는 공북문을 복원하였다.

  • 위키백과



진주성 전투에서 부녀자들이 밥을 지어 날랐다.

밥과 반찬을 따로 차려 줄 경황이 없어 밥 위에 잘게 썬

소 살고기와 각종 나물을 함께 얹어 줬다고 한다.

진주성 전투에서 진주 육회 비빔밥이 유래한다고 했다.


2차 진주성 전투에는 관군 3천여명, 의병 3천여명이고

나머지 민간인 5만명 이상 전멸을 했으니 대부분 민초가

나라를 지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심할 정도로 무능력한 선조에 붕당간의 권력 쟁탈전에

치열한 대신들로 백성들은 뒷전이였던 진주성의 전투는

우리에게 그리고 후손들에게도 영원토록 기억해 다시는

비참한 역사가 되풀이 되는것을 막아야 한다..


2017928진주성

아버지와 함께한 8주간 고국방문에서